"주말에 집에서 뭐 해?" "게임이요." "그래? 무슨 게임하는데?" "포켓몬스터요!" "응? 그게 언제 적 게임인데..." 아이는 포켓몬스터의 재미를 모르는 선생이 답답한가 봅니다. 한편 선생은 그런 구닥다리 게임을 하고 있다며 답답해합니다. 서로 답답한 상황. 선생 입장을 변호하면 아이에게서 좀 다른 이야기를 들을 것으로 기대했던 까닭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좀 새로운 것을 즐기지 않을까 하는 식의.

그러나 아이들이 포켓몬스터를 좋아하는 것이 크게 낯선 일은 아니기도 합니다. 포켓몬스터야 말로 가장 성공한 게임 콘텐츠로 꼽히니까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데는 마땅한 이유가 있는 법. 20세기말 어린이들에게도, 21세기초 어린이들에게도. <드래곤볼>이 여전히 인기를 끄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입니다. 제 어릴 적 페이지를 넘겨가며 그렇게 좋아했던 만화가 여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아이들과 <서유기>를 함께 읽었습니다. 손오공이 주인공인 이야기라니 아이들은 반기는 눈치입니다. 그러나 이내 표지를 보고는 실망하는 눈치입니다. 표지에 왠 못된 원숭이가 그려져 있으니까요. <드래곤볼>의 손오공의 멋진 모습과 영 딴판입니다. <마법 천자문>의 귀여운 모습과도 영 달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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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함께 읽으면서 아이들을 어지럽히는 내용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손오공이 사실은 돌원숭이였다는 것, '필마온'이니 '제천대성'이니 하는 별명을 얻었다는 것, '여의금고봉'과 '긴고아'를 얻게 되는 과정 등등. 이전까지 알고 있던 것과 다르기도 하고 새롭게 알게 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마법 천자문>에서도 혼세마왕이 나왔었는데..." "삼장은 여자 아니었어요?" 우리가 함께 읽는 <서유기>가 <드래곤볼>과 <마법천자문>의 뿌리가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거듭 일러줍니다.

다른 중국 전통 소설과 마찬가지로 <서유기>는 본래 민간에서 전해지던 설화를 책으로 엮어낸 작품입니다. 명나라 때 작가 오승은이 정리했는데 100회 본에 달하는 장편입니다. 내용도 많고 중간에 한시漢詩도 실려있어 완역본을 다 읽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이들과 읽은 것은 한시와 같이 지루한 내용은 빼고 이야기를 간략하게 줄인 책입니다. 그래도 두툼하니 아이들이 좋아할까 의문이었어요. 오늘날 새롭게 각색된 작품이 얼마나 재미있는 게 많은데. 다행히 옛사람의 상상력이 빚어낸 글솜씨가 영 싫지는 않은 눈치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데는 마땅한 이유가 있는 법.

<서유기>는 역사와 신화가 뒤섞인 재미난 작품입니다. 삼장법사가 실제 역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점은 많은 사람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당나라 현장스님이 그 주인공인데 그는 실제로 서천서역, 먼 인도에까지 불경을 찾아 갔다 온 인물입니다. 물론 손오공과 같은 제자는 없었어요. 출발할 때는 홀홀 단신이었습니다. 그 험한 길을 마치고 돌아온 후 쓴 글이 <대당서역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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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스님의 이 책은 중국 바깥에 대해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실제로 나라 밖으로 여행을 떠날 수 없었던 옛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바깥세상에 대해 상상하곤 했습니다. 여기에 다양한 설화들이 덧붙여 <서유기>가 만들어집니다. 불교, 도교, 민간 신앙, 거기에 먼 인도의 신화까지. <서유기> 속의 삼장법사가 실제 역사 속 인물이었다는 점도 놀라운데, 손오공이 인도 출신이었다니 아이들은 또 놀라는 눈치입니다.

손오공은 인도 신화 속에 등장하는 바람의 신 바유의 아들 하누만과 닮았습니다. 장난기 넘치는 모습이며, 마음대로 몸의 크기를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능력, 엄청난 괴력까지. 무엇보다 충성스런 마음이 손오공을 똑 닮았습니다. 서역을 오가는 상인들이 물건과 함께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해주면서 인도 신화 속의 하누만이 중국에 흘러 들어와 화과산 수렴동의 손오공이 되었습니다.